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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 갉아먹는다'…한국 초고속 새벽배송의 그늘
- 기자, 제이크 권, 최리현, 이호수
- 기자, BBC 뉴스
- Reporting from, 서울
- 게재 시간
- 읽는 시간: 6 분
아들이 숨지기 일주일 전, 박미숙 씨는 아들에게 일을 그만두라고 말했다.
당시 27살이던 장덕준 씨는 1년 넘게 국내 최대 온라인 유통업체 쿠팡의 물류센터에서 밤새 일하고 있었다. 끝이 보이지 않는 창고 안에서 플라스틱 상자와 종이상자를 가득 실은 운반 장비를 몰았다.
그 사이 장 씨의 몸은 눈에 띄게 변했다. 박 씨는 아들이 15kg이나 체중이 줄었고, 입버릇처럼 피곤하다고 말했다고 기억했다.
하지만 장 씨는 일을 그만두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일을 "시소 같다"고 말했다. 자신이 내려오면, 그 무게를 동료들이 고스란히 떠안게 된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일주일 뒤, 박 씨는 욕실에서 의식을 잃은 채 몸을 웅크리고 쓰러져 있는 아들을 발견했다.
"욕조에서 아들을 꺼내 응급처치를 했어요. 급히 병원으로 옮겼지만, 이미 사망 판정을 받았습니다."
장 씨의 사인은 심근경색이었다. 이후 조사를 진행한 근로복지공단은 과로가 사망의 원인이라고 판단했다. 박 씨는 아들의 지친 신호를 더 일찍 알아채지 못한 것을 지금도 후회한다.
"아들의 말을 흘려들었던 탓에 결국 아들을 잃었어요. 다른 사람들은 저와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장 씨는 2020년 세상을 떠났다. 하지만 6년이 지난 지금도 박 씨는 아들의 죽음의 원인이라고 믿는 '야간 배송'을 끝내기 위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장 씨가 숨진 것은 코로나19 팬데믹으로 배송 물량이 급증하던 시기였다. 당시 그의 과중한 업무 역시 팬데믹의 영향으로 설명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물류센터와 배송 노동자들의 근무 환경은 이후 한국 사회의 주요 쟁점으로 떠올랐다. 노동조합은 지금도 과로가 의심되는 노동자들의 사망이 이어지고 있다고 주장한다.
자정 전에 주문하면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배송되는 '새벽배송'은 이제 초연결 사회인 한국의 일상이 됐다. 이러한 편리함은 장 씨와 같은 물류센터 노동자와 배송기사들이 밤새 일하는 것을 기반으로 한다.
여러 업체가 더 빠르고 저렴한 배송 서비스를 앞세워 경쟁하고 있지만, 시장을 주도하는 곳은 쿠팡이다.
한국계 미국인 창업자가 설립한 쿠팡은 2015년 신선식품 새벽배송을 시작하며 국내 온라인 쇼핑의 대명사로 자리 잡았다. 현재는 전국에 촘촘한 물류망과 배송 시스템을 구축했으며, 직원 수는 10만 명에 육박한다.
하지만 이 산업을 바라보는 시선은 점차 달라지고 있다.
근로복지공단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6년 5월까지 장 씨를 포함해 물류센터와 배송 노동자 46명이 뇌혈관질환이나 심장질환으로 업무상 사망을 인정받았다. 다만 이들 가운데 장 씨를 제외한 몇 명이 야간 근무를 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근로복지공단은 이 가운데 과로가 영향을 미쳤는지 조사한 사례가 얼마나 되는지는 공개하지 않았다. 유족이 산재 신청 과정에서 이를 요청해야만 관련 조사가 이뤄지기 때문이다. 또한 모든 사례가 근로복지공단에 접수되는 것은 아니어서 관련 통계에도 한계가 있다.
기존 근로복지공단 자료에서는 주간 배송 노동자가 야간 노동자보다 과로와 산업재해로 숨지는 비율이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하지만 이에 대해서도 다른 해석이 나온다. 야간 배송이 빠르게 확대되고 있는 만큼, 아직 그 영향을 충분히 보여줄 만한 데이터가 축적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배송 노동조합은 장기적으로는 야간 근무가 건강에 더 큰 악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한다.
유엔 산하 국제암연구소(IARC)는 야간 근무를 발암 가능 요인으로 분류하고 있다. 강모열 가톨릭대학교 직업환경의학과 교수는 "그뿐 아니라 심혈관질환과 당뇨병, 정신질환 위험을 높인다는 근거도 계속 쌓이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은 야간 근로시간에 별도의 법적 제한을 두고 있지 않다. 반면 영국에서는 야간 배송기사가 24시간 동안 10시간을 초과해 일할 수 없다.
한국의 배송노동자 노조는 2025년 야간 배송을 금지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그러나 쿠팡 배송기사 노조는 조합원의 거의 대부분이 야간 근무를 선호한다고 말한다.
낮 동안 자녀나 고령의 부모, 아픈 가족을 돌봐야 하는 노동자도 적지 않다. 무엇보다 야간 근무의 임금이 더 높기 때문이다.
"평생 이 일을 할 수는 없어요. 몸이 점점 망가지거든요."
하청업체 소속 쿠팡 배송기사인 김 씨(가명)는 이렇게 말했다. 그는 신분 노출을 우려해 실명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월급 약 700만 원으로, 국내 평균 임금의 두 배에 가까운 수입을 올릴 수 있기 때문에 이 일을 계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BBC가 김 씨를 만난 것은 밤 10시. 그는 이미 첫 번째 배송을 마치기 위해 트럭에 짐을 모두 실어놓은 상태였다.
서울 서쪽 인천의 좁은 골목길을 달리며 김 씨는 오후 9시부터 다음 날 오전 7시까지, 주 5~6일 일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근무에는 쉴 틈이 없다. 트럭이 멈출 때마다 택배 상자를 들고 뛰어야 한다. 대부분의 배송기사는 배송 물량에 따라 수입이 결정된다. 오전 7시까지 배송을 모두 끝내지 못하면 자신이 맡던 배송 구역을 다른 기사에게 빼앗길 수도 있다고 그는 말했다.
처음에는 임신한 아내도 그가 운전 중 잠들까 봐 걱정했다. 하지만 이제는 몸이 익숙해졌고, 오히려 밤에는 도로가 한산해 운전하기가 더 수월하다고 했다.
"우리는 돈을 벌기 위해 야간 배송을 선택합니다."
김 씨는 자신의 건강을 이유로 야간 배송을 중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정작 자신이 내린 선택은 존중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박미숙 씨는 김 씨와 같은 노동자들이 점점 보이지 않는 존재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빠른 배송에 대한 수요가 늘면서 이런 노동이 어느새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BBC가 박 씨를 만난 곳은 서울 송파구에 있는 쿠팡 본사 앞이었다. 박 씨는 홀로 정문 앞에 서서 점심을 먹으러 나오는 직원들에게 아들과 같은 희생을 기억해 달라고 호소했다. 그러나 발걸음을 멈추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박 씨는 장 씨와 같은 사례에서 기업의 책임을 묻기가 쉽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아들이 과로로 숨졌다는 사실을 직접 입증해야 했다. 쿠팡은 근로복지공단에는 CCTV 영상 등 관련 기록을 제출할 의무가 있었지만, 유족인 박 씨에게 이를 제공할 의무는 없었다. 박 씨는 여러 달 동안 국회의원과 정부 기관을 찾아다닌 끝에야 아들의 근무기록과 관련 CCTV 영상을 확보할 수 있었다.
장 씨가 숨지기 전 몇 달 동안의 근무시간은 한국 법령상 '과로사' 인정 기준을 충족했다. 현행 기준은 사망 전 12주 동안 주당 평균 60시간 이상, 또는 사망 전 4주 동안 주당 평균 64시간 이상 일한 뒤 심근경색이나 뇌졸중이 발생한 경우를 과로와 관련된 사망으로 본다.
근로복지공단 기준에 따르면 장 씨의 야간 근무시간은 해당 근로시간 산정에서 30%를 가산해 계산됐다.
박 씨가 싸움을 이어가던 중, 국내 언론은 쿠팡의 전 개인정보보호책임자(CPO)가 김범석 쿠팡 의장과 나눴다고 주장한 대화 내용을 보도했다.
유출된 대화에서 김 의장은 내부 보고서에서 장 씨가 "열심히 일했다"는 표현을 삭제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표현은 여러 직원이 장 씨의 마지막 근무를 설명하며 사용한 말이었다. 쿠팡은 이에 대해 "불만을 품고 퇴사한 전직 임원의 근거 없는 주장"이라고 반박했다.
그러나 노조는 쿠팡이 증거를 은폐하려 했다며 형사 고발했고, 경찰은 2025년 12월 쿠팡에 대한 수사에 착수했다. 쿠팡은 관련 의혹을 부인하며, 근로복지공단이 요청한 자료를 모두 제출했고 조사에도 전적으로 협조했다고 밝혔다.
그 무렵 또 다른 사건이 세간의 주목을 받았다.
34살 오승용 씨는 배송 중 트럭이 전신주를 들이받는 사고로 숨졌다. 근로복지공단은 업무가 사망에 영향을 미쳤다고 판단해 업무상 재해로 인정했다.
오 씨의 누나는 국회에서 오 씨의 근무기록을 근거로 동생이 주 6일, 하루 11시간 이상, 대부분 야간에 일했다고 증언했다. 또 부친이 며칠 전 숨졌을 때도 병원으로 가기 전 4시간 동안 배송을 계속했다고 말했다. 오 씨는 쿠팡과 계약한 물류업체 소속이었다.
쿠팡은 직접 고용한 직원의 근무시간을 주 52시간 미만으로 제한하고 있으며, 하청업체 소속 배송기사들도 2주에 한 번은 주말 전체를 쉴 수 있도록 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노조는 오 씨의 고용업체에서는 이러한 기준이 지켜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쿠팡은 또 직접 고용 직원과 하청업체 소속 배송기사들의 건강검진 비용을 전액 지원하고 있으며, "전 세계 물류업계에서 가장 우수한 안전 기록을 유지하고 있고, 산업재해로 인한 사망사고는 단 한 건도 발생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해럴드 로저스 쿠팡 최고경영자(CEO)는 2025년 12월 국회에 출석했다. 장 씨와 오 씨의 사망 사건은 물론, 3750만 명의 이용자 정보가 유출된 사건에 대한 질의를 받기 위해서였다. 국내 최대 규모의 개인정보 유출 사고였던 이 사건으로 쿠팡은 4억1000만 달러(약 6004억원)의 사상 최대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TV로 생중계된 청문회에서 박 씨는 김범석 쿠팡 의장에게 아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고 촉구했다. 오 씨의 누나는 로저스 CEO에게 사과를 요구했다. 그는 "죄송하다"며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오 씨의 누나가 거듭 답변을 요구하자 그는 침묵했다.
쿠팡에 대한 수사는 이재명 대통령에게도 중요한 과제를 던지고 있다. 과거 공장 사고로 왼팔에 장애를 입은 이 대통령은 산업재해와 노동자 사망을 줄이는 것을 주요 국정 과제 가운데 하나로 내세웠다.
장 씨와 오 씨의 이야기는 한국 사회에서 큰 공감을 불러일으킨다. 장시간 노동이 결코 낯선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한국은 선진국 가운데 산업재해 사망률이 높은 나라 중 하나이며, 정부는 이를 개선하기 위해 수십 년 동안 노력해 왔다.
정부는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52시간으로 제한하고, 업무상 사망으로 이어진 중대한 과실이 있는 경영책임자를 처벌할 수 있도록 하는 법도 시행했다.
한편 여당은 쿠팡의 시장 지배력을 완화하기 위해 다른 유통업체들도 새벽배송에 참여할 수 있도록 현행 규제를 완화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그러나 노동조합과 시민단체, 그리고 박 씨는 이에 반발했다. 문제는 쿠팡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아들이 떠난 뒤 저는 계속 거리에서 싸우며 살아왔습니다."
보상 절차를 밟고 진실을 밝히기 위해 시간을 쏟는 동안 박 씨는 결국 가구 제작 사업을 접어야 했다. 이전에 살던 집의 생활비도 감당할 수 없어 지금은 대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지내고 있다.
그는 장 씨가 남긴 물건도 모두 간직하고 있다. 액션 피규어 컬렉션도 새집 한쪽 상자에 그대로 보관돼 있다.
아직은 아들과 작별할 준비도, 싸움을 멈출 마음도 없다고 그는 말한다.
박 씨는 생전 장 씨가 자신의 일을 '시소'에 비유했던 말을 떠올렸다. 당시에는 자신이 한쪽을 떠받치고 있다고 말했던 아들의 생각을 이제는 다르게 이해하게 됐다고 했다.
그는 장 씨와 같은 수만 명의 노동자가 시소의 한쪽에서 버티는 동안, 반대편에는 편리한 서비스를 누리는 소비자들이 서 있다고 말했다.
"조금의 편리함을 위해 다른 사람의 희생을 외면하는 사회가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