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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모습을 한 인형을 내게 주었다': 피델 카스트로의 딸이 결코 아빠라 부르고 싶지 않았던 남자에 대해 회고하다
- 기자, 아타우알파 아메리세
- 기자, BBC News 문도
- 게재 시간
- 읽는 시간: 6 분
알리나 페르난데스는 기억을 더듬을 수 있던 어린 시절 내내 피델 카스트로의 잦은 방문을 받았다.
어린 시절의 긴 시간 동안 그는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 거의 50년 동안 철권통치로 쿠바를 지배한 그 남자가 바로 자신의 친생부라는 사실을 말이다.
알리나는 1956년 아바나에서 카스트로와 수도 아바나 상류 사회의 아름다운 젊은 여성 나티 페르난데스 사이의 혼외 관계로 태어났다. 당시 그는 3년 뒤 독재자 풀헨시오 바티스타를 축출하고 카리브해의 섬나라에 독재 공산 정권을 수립하게 되는 게릴라 운동의 지도자 중 한 명에 불과했다.
이후 수십 년 동안 최대 300만 명에 달하는 사람들이 인접한 미국으로 탈출한 것으로 추산된다. 그들 중에는 카스트로 자신의 딸도 포함되어 있었다.
1959년부터 2008년까지 집권했으며 2016년 11월 암으로 사망한 카스트로는 지난 8월 13일 100회 생일을 맞았다.
그의 유일하게 인정받은 딸인 페르난데스는 마이애미에서 BBC 뉴스 문도 서비스에 20세기 가장 유명하고 논란이 많은 정치가 중 한 명의 삶과 얽힌 인생 이야기, 그리고 결코 "아빠"라고 부르고 싶지 않았던 남자에 대해 털어놓았다.
첫 기억과 밤의 방문들
카스트로에 대한 그의 첫 기억은 예전에 미키 마우스 만화가 방영되던 TV 화면을 가득 채운 턱수염 난 남자의 모습이었다.
올해 70세인 그는 "미키 마우스가 사라지고 차량에 매달린 턱수염 난 남자들로 대체됐는데 그들은 나를 꽤 겁먹게 만들었고 며칠 동안 TV 화면을 차지했다"고 회고한다.
국가의 급변은 그녀의 가족을 포함해 많은 가족들을 갈라놓았다. 그의 어머니는 혁명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알리나가 당시 자신의 아버지라고 믿었던 올란도 페르난데스를 포함한 다른 친척들은 모든 것을 뒤로한 채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싣기로 선택했다.
모든 것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채 자라나는 동안 알리나는 집에서 새로운 쿠바 지도자의 간헐적인 방문을 받기 시작했다.
그녀는 카스트로가 거실 바닥에서 자신과 놀아주며 선물을 가져다주곤 했다고 회고한다. 그중에서도 그는 아주 독특한 선물 하나를 기억해 낸다. "그는 내게 자신의 모습을 한 인형을 주었는데 나는 그 작은 턱수염 털을 뽑곤 했어요. 나한테는 그저 아기 인형이었거든요."
진실이 밝혀지다
하지만 열 살이 되었을 때 그는 친생부에 관한 진실을 알게 되었다.
"어머니가 말씀해 주셨어요. 제 학교를 전학시키려던 참이었는데 길거리의 누군가가 그 사실을 불쑥 제게 말해버리는 것을 원치 않으셨거든요."
카스트로는 드문드문 이루어지는 방문을 통해 이미 일종의 아버지 같은 존재가 되어 있었지만, 그 소식은 그에게 "배신감과 기만감"이라는 감정을 안겨주었다. 페르난데스의 설명처럼 그의 가장 친한 친구를 비롯해 주변의 많은 사람들은 그의 진짜 아버지에 관한 소문을 알고 있었다.
그는 자신의 감정을 설명하기 위해 냉소적인 표현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광대의 비밀 같은 거였어요. 서커스단 전체가 다 알고 있었죠."
페르난데스는 자신의 성을 카스트로로 바꾸지 않았다. 오랫동안 친아버지의 존재를 공개적으로 인정하기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내가 그의 딸이냐는 질문을 받으면 '아니요'라고 말하곤 했어요. 어느 날 갑자기 성을 바꾼 채 나타나는 것은 품위 없는 일처럼 느껴졌어요. 그럴 만한 이유를 전혀 찾지 못했죠."
쿠바에서 성장하면서 페르난데스의 좌절감과 환멸도 커져갔다. 아버지에 대해서뿐만 아니라 국가에 강요된 새로운 체제를 향한 불만도 커졌다. 그가 피델 카스트로의 딸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지도자에게 전달해 달라며 그에게 편지를 건네주곤 했다.
"그들은 모두 가족이 처형당하고 자신들에게는 생지옥과 다름없는 곳을 떠날 허가를 얻으려 애쓰는 사람들이었어요."
지도자를 향한 개인숭배도 존재했다.
"우리가 강제로 시청해야 했고 다음 날 교실에서 공부해야 했던 7시간 동안의 TV 연설을 하던 남자(카스트로)… 악몽 같았어요. 정신병원에서 살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죠"라고 그는 말했다.
페르난데스와 어머니가 프랑스에서 한동안 지낸 후 카스트로의 방문은 더 뜸해졌다. 그에 따르면 카스트로 본인이 어머니와 거리를 두기 위해 그곳으로 보낸 것이었다. 그때부터 쿠바 지도자는 구애자들을 거부하거나 다른 학교로 전학시키는 등 갑작스럽고 변덕스러운 결정으로 가끔 그의 삶에 불쑥 찾아오곤 했다고 그는 말한다.
"언제나 터무니없는 생각들뿐이었어요. 나는 그에게 의지하지 않고 살아가는 법을 배웠죠."
사생활 속 피델 카스트로가 어떤 사람이었냐는 질문에 페르난데스는 그가 지적이고 약삭빠르며예의 바른 "끝없는 호기심"을 지닌 사람이었다고 묘사한다. 그러나 그는 또한 아버지가 자신에게 여러 번 거짓말을 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이 한 가지를 말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곤 나중에 다른 버전을 말하곤 했어요."
부녀 간의 대화도 매끄럽게 이어지지 않았다.
"그는 독백을 하는 사람이었어요. 그가 나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할 때 그것은 나와 소통하기 위함이 아니라 계속해서 자신의 목소리로 말을 듣고 싶어 하기 때문이었죠."
하바나 탈출
아주 어렸을 때부터 페르난데스는 쿠바를 떠나고 싶어 했다고 말한다. 그는 아버지가 구축한 체제를 거부하며 그로부터 점점 더 거리감을 느꼈고 일상을 옥죄는 극심한 물자 부족에도 시달렸다.
그는 여러 차례 해외 출국을 시도했으나 정권은 이를 허가해주지 않았다.
1990년대 초반, 소비에트 연방의 붕괴는 쿠바에 이른바 '특별한 시기'를 촉발했다. 이는 굶주림과 정전으로 얼룩진 극심한 고난의 시대였다. 페르난데스는 이미 공개적인 반체제 인사였으며 최고사령관의 딸임에도 불구하고 체포될 두려움에 떨었다.
"한밤중에 자동차 문 닫히는 소리만 들려도 그들이 자기를 잡으러 온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했죠."
절호의 기회는 가까운 친구들이 주도한 치밀한 작전 덕분에 1993년 12월 19일 찾아왔다. 한 스페인 여성이 페르난데스에게 여권과 비행기 표를 빌려주었다. 다른 누군가는 그가 사용할 수 있도록 문서를 위조했고 페르난데스는 택시를 타고 수도 하바나의 공항으로 향했다.
"택시에 탄 순간부터 스페인 사람인 것처럼 억새를 연습하기 시작했어요. 공항에 도착해서 말을 시키면 억양을 맞춰야 했거든요. 그리고 운전기사를 완벽하게 속여 넘겼죠."
들통나는 것을 피하기 위해 가발을 쓰고 짙은 화장을 한 채 그는 공항에 도착했다.
"무사히 세관을 통과했어요. 비행기가 지연되어서 조용히 앉아 책을 읽으며 '음, 무슨 일이 일어나든 될 대로 되라지'라고 생각했어요."
오랜 기다림 끝에 탑승은 별 탈 없이 진행되었다. 그는 마드리드로 날아갔고 이후 미국 입국 허가를 받았다.
이 후 그는 당시 16세였던 외동딸을 위해 쿠바 출국 허가증을 신청했다. 미국의 민권 운동가 제스 잭슨 목사가 중재에 나섰고 두 모녀는 마침내 재회하여 1994년 새해를 함께 맞이할 수 있었다.
페르난데스는 미국과 스페인을 번갈아 오가며 지내다가 지난 2001년 마이애미에 영구 정착했다.
'40세가 되어서야 나는 진정으로 카스트로의 딸이 되었다'
망명의 시작과 함께 그가 수십 년 동안 숨기려 애썼던 관계는 쿠바의 상황을 고발하는 도구가 되었다.
"쿠바에서는 절대 하고 싶지 않았던 일, 즉 피델 카스트로에 대해 이야기하거나 그의 가족의 일원임을 인정하는 일을 여기 와서 하게 되었어요. 40살이 되어서야 나는 비로소 진정한 피델 카스트로의 딸이 된 거예요."
1997년 그는 자서전 《알리나: 피델 카스트로의 반항적인 딸의 회고록(Alina: Memoirs of Fidel Castro's Rebel Daughter)》을 출간했다. 이 책은 스페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어 여러 언어로 번역되었다.
2016년 11월 25일 피델 카스트로의 사망 소식을 어떻게 받아들였냐는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큰 비극으로도, 큰 기쁨으로도 다가오지 않았습니다. 나에게는 충격이 아니었어요."
카스트로 가문의 정치적 후계자인 미겔 디아스카넬 대통령 체제 하의 쿠바는 현재 많은 이들이 '특별한 시기'보다 더 극단적이라고 묘사하는 상황을 겪고 있다.
미국의 6십 년 봉쇄 조치가 강화된 가운데, 끊임없는 정전과 광범위한 낙후, 물자 부족, 기아가 이어지고 있다. 페르난데스에게 있어 현재의 위기는 그의 아버지가 강요한 정치 및 경제 체제의 산물이다.
"국가가 모든 사업을 장악할 때 모두가 길을 잃고 맹목적인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