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주룽지 전 총리에 대한 대중의 추모마저 검열하는 이유

    • 기자, 로라 비커
    • 기자, 중국 특파원
    • Reporting from, 베이징
    • 기자, 코 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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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읽는 시간: 4 분

중국 당국이 지난주 사망한 주룽지 전 총리를 추모하는 가운데, 정부 기관은 조기를 내걸었고, 베이징 중심가에는 보안 차량들이 대기하고 있다.

1998~2003년까지 중국 총리를 역임한 주룽지는 병환으로 지난주 97세의 나이로 별세했으며, 지난 17일(현지시간) 베이징에서 장례식이 거행됐다.

시진핑 현 국가주석을 비롯한 고위 지도자들이 참석한 이 장례식은 관련 영상이 전혀 공개되지 않는 등 조용히 치러졌다.

주룽지는 중국 역사상 가장 중요한 경제 개혁가 중 하나로 기억되는 인물이다.

중국 당국은 그를 "충성스러운" 당원이라고 칭송하면서도 그가 이끌었던 개혁 시대에 대한 대중의 추모가 자칫 시 주석 치하 현 정부에 대한 은근한 비판으로 쉽게 번질 가능성을 경계하는 듯하다.

동시에 인터넷에서는 주 전 총리에 관한 게시물들이 통제되고 검열됐다. 경제학자 자오젠이 쓴 한 에세이가 대표적인데, 이 글은 주 전 총리의 시대를 사람들이 "가난했지만 앞날은 분명하게 내다볼 수 있었던 시절"로 회고했다.

그는 "그때는 스마트폰도, 숏폼 영상도, 불안감을 전파하는 이들로 가득 찬 화면도 없었다"고 회상했다.

"하늘을 푸르렀고, 삶은 느리게 흘러갔으며, 사람들은 자신이 진짜 생각하는 바를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자오의 이 같은 글은 게시된 지 하루 만에 위챗에서 삭제됐다.

중국 공산당은 오랫동안 고위 관료나 공인의 사망에 대한 대중의 반응에 민감하게 반응해왔다.

1976년 저우언라이 전 총리와 1989년 후야오방 전 중국 공산당 총서기의 사망 당시에 광범위한 애도의 물결이 일었고, 시위로 번지기도 했다.

주룽지는 2022년에 별세한 장쩌민 전 주석의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중국 공산당 지도부가 모이기 불과 며칠 전에 사망했다.

장쩌민과 주룽지, 같은 시대를 풍미했던 두 저명한 지도자의 죽음은 많은 중국인들에게 한때 중국이 다른 방향으로 나아가는 듯했던 시절, 즉 세상에 문을 열고 국민들에게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할 것처럼 보였던 시절에 대한 향수를 불러일으키고 있다.

지나간 시대의 거침없는 솔직함

마오쩌둥 정권 시절 한때 숙청되기도 했던 주룽지는 1976년 마오쩌둥 사망 이후 다시 당으로 복귀했다.

이후 1989년에는 중국 공산당 총서기가, 1993년에는 국가주석이 된 장쩌민과 함께 총리직을 역임했다.

두 사람은 1998~2003년 당시 상위 지도부로서 중국을 급속한 경제 성장과 세계 무역 진출의 시대로 이끌었다.

그 기간 중국 당국은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던 국영 기업을 폐쇄하고, 기존 주택 제도를 폐지해 부동산에 시장 논리를 도입했으며, 1990년대 후반 아시아 금융 위기를 극복하고,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는 등 고통스러운 여러 변화에 나섰다.

하지만 그 시절 중국 국민들을 사로잡은 것은 두 사람 특유의 대중적인 친근함이었다.

장쩌민의 생애를 다룬 중국 국영 매체 다큐멘터리에는 그가 탁자를 두드리다가 이내 폭소를 터뜨리는 모습이 담겨 있다.

주룽지의 경우 한때 비리 금융가들을 "얼빠진 놈들"이라고 칭했으며, 양쯔강을 따라 늘어선 홍수 예방 제방을 "두부 찌꺼기처럼 엉성하고 구멍이 숭숭 뚫려 있다"고 묘사한 바 있다.

아울러 그는 무표정한 표정으로 농담을 던지는 것으로도 유명했다. 일례로 1999년 한 기자회견에서 중국이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의 민주당에 기부했다는 의혹에 대한 질문을 받자, 그는 "만약 정치 자금이 그렇게나 효과가 있다면, 1460억달러에 달하는 내 외환보유고 중 그 목적을 위해 적어도 100억달러는 쓸 수 있었을 텐데 왜 고작 30만달러만 했겠냐. 그건 너무 바보 같지 않냐"고 답하며 청중의 웃음을 자아냈다.

그가 세상을 떠난 당일, 장쩌민 관련 다큐멘터리에서는 주룽지가 동료들을 설득해 어떻게 과감한 개혁을 추진했는지 설명하는 장면이 등장했다.

그는 영상에서 "나는 장단점을 논하러 온 게 아니다. 어떻게 일을 해낼지에 대해 이야기하러 온 것"이라고 말한다.

한편 중국 SNS에서는 장쩌민과 주룽지가 함께 웃고 있는 사진이 확산하며, 이들의 솔직했던 소통을 높이 평가하는 반응이 이어지고 있다.

한 게시물에는 "그들은 진실을 말했고, 책임졌으며, 국민을 위해 아낌없이 헌신했다"고 적혀 있다.

이는 중국 대중을 사로잡은 스타일이며, 신중하게 연출된 모습을 보이는 현재 지도부의 스타일과는 대조를 이룬다.

시진핑의 서사

이 두 지도자가 이끌었던 역사의 한 장이 넘어가면서, 기업가 정신 및 부의 창출에 중점을 두었던 90년대~200년대 초반의 급속한 개혁도 막을 내렸다.

이는 중앙의 통제를 더욱 강화하고, 기술 자립과 전략 산업에 초점을 맞춘 국가 주도 경제 정책을 추진해 온 시진핑 주석과는 대조를 이룬다.

17일 40분간 진행된 연설에서 시진핑 주석은 공산당에 장쩌민 전 주석의 유산을 계승해야 한다며, 현 지도부는 그의 정치적, 이념적 과업을 이어가고 있다고 소개했다.

또한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여정에서 우리는 잠재적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높여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이어 시 주석은 "불굴의 투지와 탁월한 투쟁 역량"으로 "강풍과 급류, 심지어 맹렬한 폭풍이 몰아칠 중대한 시련에 적극적으로 맞서야 한다"고 덧붙였다.

또한 그는 1989년 상하이의 한 개혁 성향의 신문이 민주화 시위를 지지하는 입장을 표명하자 이에 강경하게 대응한 장쩌민의 조치를 칭찬하기도 했다. 해당 민주화 시위는 결국 베이징 천안문 광장에서의 유혈 진압으로 이어졌다.

영국 런던 킹스 칼리지의 중국학 교수이자 '로 차이나 인스티튜트'의 소장인 케리 브라운은 "시 주석은 중화민족의 위대한 부흥에 전념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시 주석은 역사에 대해 통일된 서사를 제시하고자 한다. 중국 지도부다 다른 길을 제시했었다는 그 어떠한 주장도 공개적으로 논의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대신, 국민들이 '만약 이랬다면'이라는 가정에 집착하기보다는, 자신들이 한 모든 일이 지금의 중국을 만들었다는 서사에 자연스럽게 녹아들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경제 성장 둔화와 인구 감소에 직면하면서 시 주석은 현재 상당한 도전에 직면한 상태다.

주택 가격은 폭락했고, 청년 실업률은 높으며, 공장 생산량은 점점 정체되고 있다.

두 자릿수 경제 성장의 시대는 이미 떠나갔다.

그리고 지나간 시대에 대한 중국인들의 애도는 열심히 일하면 가정의 삶도 나아질 것이라고 믿었던 시절에 대한 애도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에게 미래에 대한 이러한 확신은 이제 떠나갔다.

자오지안이 썼듯이, "삶은 힘들었지만, 희망이 그 고난을 지탱"해주던 시절이었다.

그 또한 현재 중국의 많은 이들이 "물질적 풍요"를 누리고 있으며, "고층 빌딩이 빼곡히 채워진 스카이라인과 차량으로 북적이는 거리"를 자랑한다고 인정한다.

하지만 그는 묻는다.

"그렇다면 왜 우리의 내면은 이토록 공허한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