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년 만에 열린 래퍼 투팍 피살 사건 재판, 배후로 지목된 '갱단 두목'은 누구?

    • 기자, 사린 하베시안
    • Reporting from, 로스앤젤레스
    • 기자, 샤이마 칼릴 & 리건 모리스
    • Reporting from, 라스베이거스 법정
  • 게재 시간
  • 읽는 시간: 4 분

1990년대 미국 힙합계의 상징적인 래퍼였던 투팍(본명 투팍 샤커) 피살 사건과 관련해 30년 만에 진행된 재판 첫날, 현지 검찰은 전 갱단 두목 듀에인 '케프 D' 데이비스가 복수심에 그날의 차량 총격 사건을 주도했다고 주장했다.

증인들은 라스베이거스 배심원단 앞에서 30년 전 투팍이 피살당했던 그날 밤에 대해 설명했다. 90년대 당시 힙합계는 갱단들이 장악하고 있었고, 경찰에 대한 불신으로 수사에 제대로 협조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이 때문에 이 사건은 20세기 가장 유명한 미제 사건 중 하나로 남았다.

현재 63세인 데이비스는 투팍 살해 혐의로 기소됐다.

검찰은 데이비스가 투팍을 향해 직접 총을 쏘지는 않았지만, 살인을 계획하고 지시했다고 추정하고 있다. 다만 데이비스는 이러한 혐의를 부인하며 무죄를 주장하고 있다.

검찰은 모두진술에서 데이비스를 총격 사건을 일으킨 이들의 우두머리였다고 지목하며, 그가 공동 집필한 회고록에서 총격 당일 밤의 상황을 상세히 기술한 점을 언급했다.

비누 팔랄 부장검사는 배심원단을 향해 "분명히 말하자면, 데이비스가 직접 방아쇠를 당겼다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조카가 구타당한 것에 대한 보복으로 해당 총격 사건을 계획했다"며 "그리고 여러분은 놀랍게도 그 사실을 데이비드 본인의 입을 통해 듣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에 맞서 데이비스의 변호인단은 이러한 주장을 "허구"라고 일축하며, 이번 기소는 수십 년에 걸친 허점투성이 수사의 산물이라고 주장했다.

데이비스는 자신의 회고록과 거리를 두며, 책의 모든 내용을 직접 쓴 것은 아니며, 판매 부수를 늘리기 위해 일부 허구로 각색된 부분도 있다고 주장했다.

남색 정장과 파란 넥타이를 매고 있던 데이비스는 변호인단과 함께 앉아, 왜 거의 30년 동안 아무도 체포되지 않았으며, "그 누구도 이러한 내용을 확증해주는 이가 없는지" 의문을 제기했다.

그의 변호인인 마이클 산프트 또한 "30년이 지난 현재, 검사가 알고있는 사실은 무엇인가?"라고 물었다.

한편 검찰 측 첫 증인으로는 1996년 9월 해당 총격 사건 당시 라스베이거스 메트로폴리탄 경찰국에서 근무하던 게리 데일이 나섰다.

데일은 투팍이 총에 맞은 직후 구급차에 함께 탔을 당시 상황을 자세히 진술했다.

그에 따르면 투팍은 무슨 일이 벌어졌으며, 누가 자신에게 총을 쏘았는지 등 어떠한 정보도 경찰에게 제공하기를 거부하며, "우리가 알아서 처리할 것"이라고 했다.

이 사건의 중심에는 90년대 랩 가사와 뉴스 보도를 통해 널리 유명해진 동부와 서부 해안 힙합계의 라이벌 구도와 '블러즈' 대 '크립스' 간 거리 갱단 간 세력 다툼이 자리하고 있다.

경찰은 오랫동안 이 사건에 대해 협조가 부족해 수사가 늘 막다른 길에 이르렀다고 주장해왔다. 그러나 투팍의 측근들은 당국이 초기부터 자신들을 용의자처럼 취급했고, 중요한 단서들을 제대로 추적하지 못했다고 말한다.

17일 하루 종일 검찰은 배심원단에게 이러한 당시 시대상을 설명하며, 총기와 갱단이 지배하는 세계에서는 "침묵이 곧 생존"이기에 이 총격 사건에 대한 정식 형사 기소가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나 검찰은 침묵을 지키기 어려워하던 "한 사람"이 바로 피고인 데이비스라며, 데이비스가 1998~2003년 사이 이 사건에 대해 "여러 차례" 언급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의 주장에 따르면, 데이비스는 사건 몇 시간 전 자신의 조카인 올랜도 앤더슨이 라스베이거스에서 투팍과 다툰 것에 대해 "그냥 넘어갈 수 없는 일"이라고 판단해 총격 사건을 계획했다고 말했다.

당시 유명한 래퍼였던 투팍은 1996년 9월 7일 마이크 타이슨의 복싱 경기를 관람한 이후 차량으로 이동하던 중, 다른 차량에서 괴한이 쏜 총에 맞았고, 6일 만에 숨졌다. 당시 불과 25세였다.

검찰은 거리 갱단 '사우스 사이드 콤프턴 크립스'의 전 지도자였던 데이비스가 투팍의 "죽음을 지시한" "현장의 지휘관"이었다고 주장한다.

투팍 피살 사건은 데이비스 본인이 2019년 출간한 회고록을 통해 공개적으로 입장을 밝히기 전까지 사실상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었다. 데이비스는 회고서와 여러 인터뷰를 통해 자신이 그날 밤 투팍이 타고 있던 차량을 향해 총을 쏜 차량에 타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그는 자신이 살인에 사용된 총을 조카 앤더슨에게 직접 건네주었고, 앤더슨이 투팍을 향해 발포했다고도 적었다.

그러나 그의 변호인단은 이 책은 소설에 가까우며, 따라서 30년 전 사건과 관련된 형사 재판에서 증거로 사용될 수 없다고 주장했다. 다만 판사는 해당 회고록이 법정에서 증거로 사용될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의 변호인단은 누락된 경찰 보고서, 논란의 여지가 있는 증거, "편향적이고, 부실하며, 불완전한" 수사 과정을 지적하고 있다. 이어 검찰이 "범죄 전과가 있고, 금전적 동기가 있으며, 진술이 일관되지 않은 신뢰할 수 없는 인물들"에 의존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변호인단은 증인들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진술을 바꾸었을 뿐만 아니라, 금전적 유인이나 언론의 주목, 또는 수사관들이 제공한 정보의 영향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번 재판은 일주일간의 배심원 선정 절차를 거친 뒤, 17일 모두진술과 함께 시작됐다. 앞으로 몇 주간 증인, 각 분야 전문가, 수사관, 어쩌면 일부 유명인 증인들까지 법정에 서서 그날 밤에 대해 증언할 것으로 예상된다.

검찰은 데이비스가 총기를 확보한 뒤 라스베이거스의 한 클럽으로 가기 위해 차량 2대를 준비했으며, 그중 한 대인 흰색 캐딜락에는 조카 앤더슨을 포함해 남성 총 4명이 타고 있었다고 주장한다.

팔랄 부장검사는 배심원단에게 이들이 "술 좀 사고 라스베이거스 대로로 돌아가 파티를 벌이자"고 결정해 이동하던 중, 여러 차량이 줄지어 가는 것을 목격했고, 그중 한 차량에서 투팍과 '데스 로 레코드'의 공동 설립자인 매리언 '슈그' 나이트를 발견했다고 설명했다.

팔랄 부장검사는 바로 그때 데이비스를 비롯해 캐딜락에 타고 있던 일행들은 유턴을 해 투팍과 나이트 일행과 대치하기로 결정했다고 덧붙였다.

이후 캐딜락의 조수석에 앉아 있던 데이비스가 앤더슨에게 총을 건네주었고, 앤더슨이 투팍의 차를 향해 총을 발사했다는 설명이다.

한편 총격 당시 현장에 있었던 여성인 잉그리드 스톡스는 그날 밤 친구들과 함께 라스베이거스 주변을 차로 돌아다니다가 투팍과 나이트를 마주쳤다고 증언했다.

스톡스의 친구 하나가 나이트를 알고 있었고, 나이트는 스톡스 일행에게 자신들을 따라 클럽에 가자고 제안했다. 이에 라스베이거스 거리를 가로질러 가고 있었으나, "우리 뒤에서 차량 한 대가 우리 앞으로 끼어들려고 했다"고 한다.

그러다 스톡스 일행은 신호등에서 멈춰 섰고, 다른 차량 때문에 걱정돼 운전자를 바꾸고자 길가에 잠시 차를 세웠다.

스톡스는 "그렇게 우리가 고개를 숙이고 안전벨트를 풀고 있었는데 총성이 들렸다"며 "순식간에 지옥이 펼쳐졌다"고 증언했다.